이란 협상 재개 기대 + 유가 급락 + ASML 실적 — 세 개의 호재가 동시에 코스피를 6,091선으로 밀어 올리다
장세 개요 — 6,091pt 안착, 전쟁 이전 수준의 완전 회복
4월 1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5,967.75) 대비 123포인트 이상 급등하며 6,091.39로 마감했다. 이는 미·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수준을 완전히 회복한 것으로, 지수가 3월 저점(5,052) 대비 약 21% 반등한 자리다. 장 초반 상승 출발 이후 차익 실현 압력이 일부 제동을 걸었으나, 오전 중 ASML 1분기 실적이 공개되고 수주잔고 호조가 확인되면서 반도체주가 재차 상승폭을 확대했다. 코스닥 역시 1,140선 안팎에서 동반 강세를 보였다.
외국인과 기관이 동시에 순매수에 나서며 수급 구도가 뚜렷하게 개선됐다. 전일(4/14) 수급 기준으로 외국인은 현물 8,374억원, 기관은 1조 2,543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견인했고, 이날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졌다. 4월 1일부터 13일까지 외국인의 코스피 누적 순매수는 4조 5,360억원으로, 2월·3월의 56조원 규모 대이탈 이후 처음으로 의미 있는 귀환 신호가 점등됐다.
지정학 변수 — 협상 재개 기대, 유가의 역설적 기여
이날 시장의 가장 큰 외부 동력은 미·이란 2차 협상 재개 가능성이었다. JD 밴스 부통령이 "협상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발언한 데 이어,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우라늄 농축 20년 중단)과 이란(5년 역제안) 간 구체적 제시안이 교환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완전한 협상 타결과는 거리가 있지만 합의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뚜렷이 살아났다.
유가의 급락은 이중적 호재로 작용했다. WTI가 전일 대비 7% 이상 하락해 배럴당 91달러 선으로 내려앉으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비용 부담 완화 기대가 강화됐다. 원/달러 환율도 1,470원대로 하락해 3월 고점(1,535원)으로부터 65원 이상 낮아졌다. 환율 강세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환차손 부담을 줄여 한국 자산의 실질 수익률 매력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이란 핵 협상의 구조적 간극은 여전히 넓다. 우라늄 농축 허용 기간 차이(20년 vs 5년)는 단순한 숫자 협상이 아니라 이란 체제의 전략적 핵 억지력 보유 의도와 직결된다. 시장은 합의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이 종류의 협상이 수 주 내에 타결된 사례는 드물다는 점을 냉정하게 병행해서 봐야 한다.
반도체 — ASML 실적 + 외국인 복귀 + 딥밸류의 삼중주
이날 지수 상승을 주도한 섹터는 단연 반도체였다. SK하이닉스는 4.9% 오른 115만 6,500원에 마감하며 연고가를 재경신했다. 전일 110만원 선을 처음 돌파한 데 이어, 4월 23일 예정된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어닝 서프라이즈 기대감이 선반영되는 흐름이다. 삼성전자도 동반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1분기 영업이익 잠정치(57.2조원)를 발표해 컨센서스 상단을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상태다.
장 중 발표된 ASML의 1분기 실적은 반도체 섹터 전반에 추가 동력을 공급했다. ASML은 수주잔고(백로그)가 시장 예상을 상회하는 수준을 유지했으며, EUV 장비 수요의 구조적 견조함이 재확인됐다. 이는 HBM4 양산 사이클 및 차세대 파운드리 전환 투자가 계획대로 진행 중임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됐다. 국내 반도체 장비주도 동반 강세를 보였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의 괴리는 여전히 선명하다. 삼성전자 어닝 서프라이즈 이후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6.6배로 낮아졌다. 이는 신흥국 평균(11.2배)의 절반 수준이자, 역대 최저 밴드에 근접한 수치다. KB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6년 합산 순이익이 코스피 전체 예상 순이익(약 457조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며, 코스피 목표 7,500선을 제시하고 있다.
수급과 매크로 — 외국인 복귀의 구조와 환율 변수
외국인의 4월 귀환은 수치상으로는 의미 있지만, 맥락적으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4월 1일부터 13일까지의 누적 순매수(4.5조원)는 2~3월 순매도(56조원)의 8%에 불과하다. 복귀의 강도보다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2조원)와 SK하이닉스(2조원)에 매수가 집중됐다는 점은, 이번 외국인 자금의 성격이 반도체 실적 모멘텀 중심의 선택적 귀환임을 시사한다.
환율은 여전히 양면적이다. 원/달러가 1,470원대로 내려앉으면서 달러 강세 국면의 완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중동 사태가 안정되면 환율이 빠르게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협상 진전 기대가 지속될 경우 1,450원 이하로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환율 하락이 너무 빠를 경우, 수출 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달러 매출 환산 이익이 줄어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이날의 우호적 분위기에 기여했다. 3월 PPI는 전년 대비 4.0%로 컨센서스(4.6%)를 크게 하회했고, 앞선 3월 소비자물가(CPI)도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전쟁발 인플레이션이 장기물가 기대에까지 침투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는, 연준의 금리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일부 완화시킨다. 다만 시장은 현재 2026년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매우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전망과 시나리오 — 6,200의 저항과 두 갈래 길
코스피 6,091은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레벨이다. 이란 전쟁 발발 직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으며, 다음 저항선으로는 6,200~6,300 구간이 꼽힌다. 이 구간은 올해 1월 고점권이기도 하다. NH투자증권이 제시한 이번 주 코스피 예상 밴드(5,400~6,200)의 상단에 이미 근접해 있는 상황이다.
낙관 시나리오는 다음의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미·이란 2차 협상이 조기 재개되고 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에 대한 합의 가능성이 공식화될 것, TSMC가 4월 16일 발표할 1분기 실적에서 HBM 관련 수요 지속이 재확인될 것,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로 안착해 외국인의 추가 매수 동기를 강화할 것. 이 세 조건이 충족될 경우, 코스피의 6,300~6,500 목표는 현실적 시야 안에 들어온다.
비관 시나리오는 단 하나의 변수로 촉발될 수 있다. 협상이 다시 결렬되거나 호르무즈 봉쇄가 강화될 경우, 유가가 다시 $100을 넘어서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된다. 이 경우 외국인은 다시 반도체를 매도하고 환율은 1,500원대로 복귀할 수 있다. 증권가 일부에서는 "방향성 있는 자금 유입이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수준"이라며 외국인 복귀의 지속성에 대한 유보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코스피 6,000대는 반도체 실적 사이클과 지정학 리스크 완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수준이다. 두 변수가 동시에 우호적일 때 시장은 빠르게 오르지만, 그만큼 두 변수 중 하나가 꺾이는 순간의 낙폭도 크다. 현재의 랠리가 '프리미엄의 회복'인지, 아니면 '낙관론의 선반영'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투자자 각자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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